2003년 8월 15일 금요일

닭개장의 깨우침

오늘은 8월 15일, 광복절이자 말복이다.

예전에 초복, 중복, 말복, 광복으로 복날이 4개라는 개그도 있었는데
아마도 국민학교 다닐때 쯤이 아닐까 한다. 그 당시에는 뒤집어 지게 웃었지만
지금은 그런개그를 듣는다면 비웃음밖에 안나올듯 싶다. 타락한걸까?
아무튼,복날음식으로 대표적인것이 개고기, 삼계탕, 육개장 정도인데
그중에 삼계탕, 정확히는 닭에 대한 잡담을 하자면...

난 닭을 무척 좋아한다. 특히 이렇게 더운날 통닭에 생맥주 한잔이라면
그보다 더 좋은 조합이 있을까? 닭집 앞을 지날때면 풍겨오는 냄새에
침이 꿀떡꿀떡 넘어가는건 정말이지 어쩔 수 없다.

다행인지 불행인지 지금 사는 집 근처엔 마땅한 닭집이 없는 덕분에
먹고 싶다는 욕구를 억눌러야 하는 고통이 없긴 하다. ^^;
(하지만 오늘 문앞에 붙은 닭집 광고를 보는건 상당한 유혹이다 ㅠㅠ)

예전 학교식당에는 가끔씩 '닭개장'이란 메뉴가 있었다.
당시 가격이 1500원이었으니 1800원하던 메뉴에 비해선 싼 메뉴였다.
그도 그럴것이, 떨렁 밥한그릇, 국, 김치 정도가 메뉴의 전부였으니까.
1800원짜리 고급(?) 메뉴는 반찬이 몇가지 더 나왔었다.

하지만, 학교식당의 그 1500원짜리 닭개장은 정말 걸작이었다.
가끔 요리 만화를 보면 요리를 먹는 사람들이 한입 먹는 순간 황홀경에
빠져들어서 둥실둥실 떠다니는 장면들이 있다.
학교 식당의 그 닭개장도 비슷한 위력을 지니고 있었다.

닭고기를 한입 먹는 순간 닭의 힘겨웠던 생애가 눈앞을
스치고 지나가면서 주루룩 눈물이 흐른다.

'닭아, 너 정말 고생만 엄청나게 하다 죽었구나 ㅠㅠ'
좁은데 갇혀서 알만 낳다가 알을 못낳게 되자 단돈 500원에 팔려나가는
한마리 암탉의 슬픈생애에 대한 동물 다큐멘터리를 한편 본 느낌이랄까...ㅡㅡ;;

학교 앞 식당에서는 닭개장이 2000원 이었다.
그 닭개장을 먹으면 '얘는 비교적 평온한 삶을 살았구나..'
라는 느낌이 머리를 바로 스치고 지나간다.

학교식당 음식은 닭개장에 대해서는 새로운 경지에 눈을 뜨게 해주었다.
바로 닭의 생애를 느낄 수 있게 해주는 깨우침을 말이다.

그래서 나는 기회가 닿을때마다 후배들에게 말한다.
'학교식당에 닭개장이 나오면......그냥 500원 더 주구 밖에 나가서 먹어'